이 또한 흘러가리라
[2011-12-29 10:01 입력 / 2012-04-13 09:59 수정]  안성문
이 또한 흘러가리라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우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기형도의 <도시의 눈> 중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눈이 내렸다. 첫눈이 오면 어머니는 일찌감치 싸리 빗자루로 눈길을 쓸어 놓으셨다. 나는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길을 지나며 새발자국 처럼 찍힌 내 발자국을 가끔 돌아보곤 했었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1) 작별1
세밑에 날아든 후지쯔배 중단 소식이 나를 슬프게 한다. 후지쯔배는 일본이 만든 최초의 세계대회였지만 이 기전의 최대 수혜자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6회 때 유창혁을 시작으로 올해(24회) 박정환까지 무려 15차례나 우승컵을 가져 왔다. 조훈현, 이창호는 말할 것도 없고, 이세돌 박영훈 박정상 강동윤 박정환 같은 신예 강자들이 모두 이 무대를 통해 세계 정상으로 도약했다.


▲ 마지막 후지쯔배 주인공인 박정환 9단


유난히 후텁지근했던 93년 7월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서른 한살의 나는 월간 바둑의 필자 자격으로 한국기원에 출입하고 있었고, 일본 오사카서 열리는 후지쯔배 준결승의 결과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다섯 평 남짓한 관철동의 기사실은 시시각각 일본서 팩스로 전해지는 기보를 통해 형세를 알고자 하는 기사,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의 최강 전력이라 할 조훈현과 유창혁이 각각 일본의 노장 가토, 아와지와 마주했을 때 솔직히 난공불락의 후지쯔배도 드디어 함락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외로 전개됐다.

먼저 유창혁이 아와지 9단을 너무 궁지로 몰다가 다 매복에 걸려 일찌감치 필패의 형세가 됐다. 조 9단 역시 살인청부업자라 불리는 가토 의 강력한 펀치에 급소를 맞고 그로기 상태로 초반부터 끌려 다녔다. 지켜보던 서봉수 9단은 오후 들어 일찌감치 두 판 다 가망 없음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 날 오후 5시쯤부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조9단이 가토의 방심을 틈타 놀라운 추격전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결국 200수가 넘어 가토를 붙잡고 만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조9단의 ‘반 집’승. 그러나 드라마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 유창혁 마저 도무지 이길 수 없다는 바둑을 다시 ‘반 집’으로 역전시키면서 한국은 두 판 합쳐 단 ‘한 집’으로 후지쯔배 정복과 세계 4대 기전 석권이라는 위업을 동시에 달성한다. 그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그 때 바로 옆의 아무나를 부둥켜 안고는 펄쩍펄쩍 뛰며 “이럴 수가!”를 외쳤다. 삶에 기적이 실재한다는 것을 생생히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런 후지쯔배가 아련한 첫 키스의 추억처럼 사라지려 한다.

(2) 작별2
루이나이웨이. 장주주 부부가 이달 말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중국기원과의 불화로 고국을 떠난 것이 1990년 이었으니 무려 21년만의 귀향이다.


▲ 장주주9단과 루이나이웨이9단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나 할 까. 고향의 부모도 연로해졌고 소원(疏遠)했던 중국기원과의 관계도 원만해져 지난 해부터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사람 다 됐나 싶었는데 돌아간다 하니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루이.장 부부가 지난 12년 8개월간 활동하면서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다. 루이는 그 동안 여섯 차례나 여류 기전을 싹쓸이 한 것을 비롯, 모두 29개의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남편 장주주의 맥심배 우승까지 포함하면 부부 합산 30회의 우승 기록이다. 특히 2000년 제 43기 국수전서 조훈현에게 도전해 타이틀을 따낸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13년 가까운 한국서의 생활 동안 부부는 늘 바늘과 실처럼 함께 다녔다. 매일 손을 잡고 한국기원을 오갔으며 만나는 사람에겐 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국기원 근처에 아파트를 마련한 다음에는 이따금씩 직원들을 불러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한국기원 직원 하나가 집을 사는데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선뜻 거금을 빌려주기도 한 그들이었다.

한국에 온 처음이나 지금이나 그들은 늘 여일(如一)했다. 매일 바둑이 벌어지는 현장을 오갔고, 누구보다 열심히 긴 시간 동안 복기를 했다. 부부는 마치 도인들처럼 그 흔한 화 한번 내는 적이 없었다. 아름다움 사람이 남긴 자리는 오래 간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들이 없는 자리를 벌써부터 허전해 한다. 하지만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다. 아쉽지만 언젠가는 가야 할 사람.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

“자이지엔(再見), 루이!”


(3) 작별3
이번 회를 끝으로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처음 1년만 하자고 한 것이 어찌하다 보니 4년이나 끌고 오게 됐다. 지난 4년간 나 자신은 힘든 터널을 지나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 지, 답 없는 질문 만을 되풀이하던 시간이었다. 그 때 만약 이 컬럼을 쓰는 일 마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 수 있었을까. 솔직히 지금 반문해도 나는 자신이 없다.

박치문 선배는 매일같이 20년 이상을 어찌 그렇게도 좋은 글을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애초에 그런 필력이 없는 나로서는 매회 연재를 할 때마다 두려웠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것을 이겨내도록 힘을 북돋아 준 좋은 선후배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매번 글을 읽고 소중한 댓글을 달아주는 독자들이 있었다.. 그리 본다면 지난 4년간 나는 헛수고를 한 것도, 아주 불행한 사람도 아니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들에게 감사를 보낸다.

고난의 세월은 지나고 보면 큰 자산이 된다. 나 또한 본 연재를 통해서 바둑계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많이 가졌고, 재주 없는 글도 자꾸 쓰면 나아지는 구나 하는 자족의 기쁨도 누렸다. 이런 경험은 앞으로 바둑계에서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해나갈 때 소중한 밑천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땡큐 엠게임, 아듀 2011년”


일찌감치 끝내야 하는 글을 염치없이 오래 쓰게 된 데에는 엠게임 관계자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녹녹치 않은 여건에서도 계속 글을 슬 기회를 준 엠게임 권이형 사장과 나순규 실장, 그리고 형편 없는 원고를 매번 힘들게 구한 사진과 더불어 멋지게 가다듬어준 김종현씨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이 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은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스스로를 질타하며 하얗게 밤을 새운 지난 4년의 추억 속에 고마움과 외로움, 절망과 기쁨을 한데 묻고자 한다. 솔직히 좀 전 까지만 해도 연재만 마치면 살 것 같다는 기분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왜 이리 허전함이 엄습하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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