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접대법

상수는 연결된 형태의 돌을 제일 싫어한다

바둑판 위에 놓인 나의 돌이 모두 연결된 형태일 경우, 그 바둑을 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나의 돌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상대방의 돌이 모두 끊겨 있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 만큼 상대방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판단해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접바둑에서 필승비법을 묻는 이에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연결만 하세요. 그러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간명하게 답변한 프로기사도 있듯이, ‘어떻게 해야 돌을 연결할 수 있느냐’ 하는 궁리가 승리를 향해 다가서는 쉬운 길입니다.
‘ 나의 돌을 연결함으로써 먼저 안정을 도모한다’는 사고방식만 갖고 있으면 상수는 아주 피곤해 할 것입니다. 하수의 돌을 분단해야 뭐가 되어도 될 텐데, 다 연결해 버리면 공격할 돌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상수의 돌만 여기저기서 끊긴 형태가 되어 핍박을 받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말이 쉽지, 상수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수가 돌을 연결하도록 내버려 둘 리 만무하죠. 어떻게든 분단하려고 온갖 수단을 부려옵니다. 이번 회의 테마는 상수의 분단책에 한 하수의 대처방법입니다.

장면도

석점 접바둑입니다.
좌하귀에서 정석이 진행중입니다. 백1의 걸침에 흑2의 한칸협공은 좌변에 대세력을 건설하고 싶을 때 쓰는 유력한 협공 가운데 하나입니다. 백3의 3·三침입은 아무리 상수라고 해도 이 정도의 곳이겠죠.
흑4는 이쪽에서 막는 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그런데 흑6(호구되는 곳 급소에 해당하는 절대수!) 때 백7로 올라선 점이 흑의 의표를 찌른 수로, 응수에 따라서는 흑을 분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물론 이 수도 정석의 일종이지만, 흑이 백A만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자, 여기서 흑의 대처방법은 무엇일까요?

1도(애초 흑의 구상)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약간의 보충설명.
흑1에 백2면 흑3으로 봉쇄해서 좌변일대에 세력권을 형성하자는 것이 애초 흑의 구상이었습니다. 이것이 널리 쓰이는 기본정석이기도 합니다.
3으로 A에 누르는 수도 배석관계에 따라서는 유력합니다.

2도(두 가지 코스)

흑1 때 백2로 내려서는 수는 실리에 짠 수이며 아울러 좌변 침략을 엿보자는 뜻입니다.
여기서 흑은 3, 백4를 교환하고 흑5(좌변을 중시하는 수)로 막을 수도 있으며, 5 대신 A(중앙을 중시하는 수)에 뛸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코스 모두 정석.

3도(흑, 금기사항을 범하다)

흑1, 백2 때 흑3으로 손을 돌리는 구상은 못씁니다. 백4 이하 8까지 흑▲가 다쳐서는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며 좌변의 세력도 퇴색했습니다. 상수는 쾌재를 부르겠죠.
정석 도중에 딴전을 피우는 것은 참신한 착상일 수도 있으나, 이 경우 한수로 대세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흑돌 전체가 연결되는 형국이므로 1도 흑3을 절대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흑은 금기사항을 범한 셈이죠.

4도(백의 의도가 성공)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장면도 다음 흑은 두점머리를 1로 두드리고도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2의 젖힘이 강수입니다. 흑3의 끊음은 내친 걸음이자 기세이지만 백은 4로 꽉 이을 것입니다. 6까지 흑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싸움이며, 분단을 획책한 백의 의도가 보기좋게 성공한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5도(흑, 선택의 기로)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온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흑1로 나가는 한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흑은 백2 때 어느쪽을 끊을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백은 바둑격언대로 흑이 끊어온 쪽을 잡을 것입니다. 흑3쪽을 끊는 것이 옳은 방향입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차차 밝혀집니다.

6도(흑, 막강한 세력)

계속해서, 백1로 끊은 흑돌을 잡는 것은 당연한 한수입니다.
흑은 2를 선수하고 비로소 4로 두점머리를 두드리는 것이 좋은 수순입니다. 백5로 잡을 때 흑6·8로 단수해 죄어붙인 다음 10에 호구쳐 정석이 일단락됩니다.
백은 실리를 얻고 선수를 잡았지만, 흑은 좌변에서 좌하쪽에 이르는 막강한 세력을 쌓았습니다.
흑은 애초의 구상을 관철하면서 백의 분단책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7도(백1, 무리한 수법)

흑▲로 두점머리를 두드렸을 때 백1로 빈삼각으로 꼬부려나가서 흑을 분단하는 것은 무리한 수법입니다. 흑2로 끌어내는 수는 절대이며, 백3에 흑4가 배워 둘 만한 행마법입니다.
백5의 단수에는 흑6으로 비켜서 받아 충분한 자세입니다. 이 싸움은 백이 유리하다고 볼 수 없겠죠. 또한 좌하귀 백에 대해 흑A로 내려서는 것이 선수가 되는 점도 자랑입니다.

8도(흑, 파탄에 빠지다)

3도의 변화로, 백이 △로 젖히는 순간 흑1·3으로 나가서 끊는 것은 어떨까요. 백이 끊은 쪽을 잡아준다면 흑은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백은 미안하게도(?) 4쪽을 이어 버립니다. 이 다음 흑5·7로 백 두점을 잡겠다고 하는 수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백8로 단수하고 10으로 나오면 흑은 파탄에 빠지니까요.

9도(상수의 주문)

5도의 변화.
흑1로 반대쪽을 끊는 것은 판단착오입니다. 백은 당연히 2로 잡습니다. 흑3·5로 두점을 접수해 실리는 얻었지만 백6을 허용해 대세력작전에 차질이 일어났습니다. 더욱이 흑▲가 백의 강한 돌에 붙어 있어 거의 쓸모없는 돌로 변한 점도 흑으로서는 커다란 마이너스입니다. 아마도 상수의 주문은 바로 이 그림이었을 것입니다.

다음 강의 시간엔 ‘상수, 겁없이(?) 두점머리를 두드리다’ 라는 주제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