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수 접대법

근거를 빼앗는 붙임수 대책

‘근거’라는 낱말을 국어대사전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 데 터전이 되는 곳. 어떤 의견이나 의론(議論) 따위의 이유 또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바둑에서의 근거는 첫 번째 설명에 가깝습니다. 근거란 삶을 얻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 근거는 삶뿐 아니라 실리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기에 상수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수의 돌의 근거를 빼앗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수들은 삶의 터전인 근거가 없어지면 죽을까봐 걱정합니다. 그래서 당황한 나머지 행마가 이상해지고 손해수도 연발합니다. 그러다가 어이없이 횡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정말 비극이죠.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으려면 근거를 소중히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수의 돌의 근거가 확실하면, 상수는 정말 낙이 없습니다. 트집 잡을 데도 없고 겁을 줄 만한 상황도 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장담은 못합니다)

이번 주는 지난 주에 이어서, 무리한 상수의 주문을 분쇄하는 비책이 그 테마입니다. 근거를 빼앗으러 온 상수의 붙임수, 그에 대한 하수의 대책을 검토합니다.

이번 주도 석점 접바둑입니다.

좌상귀가 초점입니다.
화점 양걸침정석이 진행중입니다.
  백1의 붙임수는 흑의 근거를 빼앗아 미생마로 띄워 놓겠다는 음흉한 속셈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백의 형태도 불안정한 만큼, 백1은 무리한 주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백1로는 A에 뛰는 것이 무난한 수이며 정석의 코스이기도 합니다.
상수의 무리한 붙임수에 대한 흑의 대책을 생각해 보십시오.

1도(정석/예상되는 진행)

본래 장면도 백1의 붙임수로는 본도 1로 한칸을 뛰는 것이 상식적이며 무난합니다.
계속해서 흑2의 마늘모는 이것이 행마법이며 백3도 당연한 한수입니다.
그 다음 흑4의 젖힘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귀의 보강으로 여기까지가 정석입니다. 이러면 백은 좌변이 허약하므로 5·7로 밀어 두고 상변을 9에 지키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거기서 흑10으로 좌하귀를 굳혀 알기 쉬운 바둑입니다.

2도(실리와 근거의 요소)

전도 흑4를 손빼어 좌상귀를 두거나 하면 백2의 붙임수가 통렬한 급소입니다.
흑2로 차단할 때 백4를 선수하고 6에 건너가 버립니다. 
이러면 흑은 순식간에 근거를 잃고 중앙을 향해 피곤한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도 흑4는 실리도 크지만 근거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3도(젖히는 수는 있지만)

백△ 때 흑1로 젖히는 수는 있습니다. 백이 2·4로 건널 때 흑5로 끊겠다는 뜻이죠. 
그러나 백은 6, 흑7을 활용하고 8 이하로 석점을 싹싹하게 버립니다.
12까지 되면 오히려 약했던 백을 강화시켜준 의미가 있고, 흑 자체도 아직 완생이 아니므로 바람직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4도(흑2에서 4의 응수가 성립)

백△, 흑▲를 선수하고 나서 백1로 붙여 오는 것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흑2로 내려서서 그만이죠.
이 다음 백3에 대해 A로 잇지 않고 흑4로 배붙임하는 절묘한 응수가 성립합니다.
  이 수는 실전에서 매우 쓰임새가 많은 만큼 꼭 익혀 두십시오.
백5에는 흑6으로 따라막아 버려 아무 일도 없습니다. 여전히 백은 A로 끊을 틈이 없는 것입니다.

5도(흑2는 백의 주문)

자,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백1의 주문은 흑2로 내려서서 차단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결과는 앞서의 2도보다도 백이 더 좋습니다.
흑은 혹시 백의 약점이 많으므로 아무 데나 끊어도 수가 되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6도(오히려 흑이 곤란하다)

한번 시험해 볼까요.
전도 다음 흑1로 끊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백2로 잇고, 흑3에 끊어서 수단을 부리는 정도일 것입니다. 
여기서 백4·6이 배워둘 만한 좋은 수순입니다. 흑이 이에 굴하지 않고 7 이하 11의 맥을 구사(다음 12의 곳과 A의 곳 축을 맞보고 있음)하는 것은 일방적인 수읽기입니다. 
오히려 백12 다음 A와 B가 맞보기여서 흑이 곤란한 입장에 놓입니다.

7도(역시 백의 주문 가운데 하나)

그렇다고 백△ 때 흑1로 젖히는 것은 앞서의 3도와 비슷한 양상이 되므로 권장할 만한 수가 아닙니다.
백2·4는 당연하며 흑5로 끊을 때 백은 6 이하 10을 선수하고 12로 뛰어들어 좌변에 진출합니다. 
3도 12로도 이렇게 둘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겠죠.

바깥쪽이 튼튼해지고 상황이 바뀌면, 이 흑일단이 A로 치중당해 죽음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것도 백의 주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8도(흑1, 올바른 대응책)

백△의 붙임에 대해서는 흑1쪽을 내려서는 것이 간명하면서도 올바른 대응책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은 2쪽으로 건너지 않을 수가 없겠죠. 거기서 흑은 3에 끊습니다.
그러면 백은 4·6으로 처리하는 정도이니 흑7까지 백 두점을 잡고 안정해 걱정이 없습니다.
이 다음 백8, 흑9라는 식의 진행을 예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9도(흑, 호조의 국면)

흑1 때 백이 2로 상변을 지키면 흑3으로 젖혀 백△ 한점을 접수해 역시 만족스런 결과입니다. 귀의 실리도 적지 않고 이것으로 안정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큽니다.
백은 이렇게 되면 매우 바빠집니다. 좌변 백 넉점의 수습이 문제가 되니까요. 4·6으로 틀을 갖출 때, 흑7의 마늘모붙임으로 공세에 나서 호조의 국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음 강의 시간엔 ‘하수의 붙여뻗음, 상수의 나가끊음’이라는 주제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